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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특집~아이돌의 역사~(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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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를 움직이는 아이돌 산업. 40년에 걸쳐 일본을 지지해 온 아이돌들을 연표와 함께 플레이백! 시대와 함께 상징은 변해 가지만, 누구나가「위안」이나「동경」을 하면서, 아이돌에게 두근거림을 느꼈을 것이다. 최근은 아이돌의 저연령화가 진행, 아이돌을 함께 길러 나간다는 팬의 시선이 많은 듯 하고, 그 방식은 각지방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그리운 아이돌부터 최근 아이돌까지. 아이돌사로 보는 아이돌상의 변천

70년대

70년대:종이 테이프(던지는 것) 나 외침(이름이나 그룹) 등 친위대가 조직화된다.
71년:「스타 탄생!」방송개시(~83년9월). 야마구치 모모에(山口百恵)、핑크 레디(ピンクレディー)、中森明菜(나카모리 아키나)등 인기 아이돌을 배출.
73년:야마구치 모모에(山口百恵)、모리 마사코(森昌子)、사쿠라다 준코(桜田淳子)의「꽃 중의 3트리오」라고 불림.
78년:「ザ・ベストテン(더 베스트 텐)」방송개시

1970 년대에 데뷔한 아이돌

전반
아마찌 마리(天地真理)、코야나기 루미코(小柳ルミ子)、아그네스 장(アグネス・チャン)、야마구치 모모에(山口百恵)、캔디즈(キャンディーズ)

후반
핑크 레디(ピンクレディー)、사카키바라 이쿠에(榊原郁恵)、이시카와 히토미(石川ひとみ)、이시노 마코(石野真子)

80년대

80년대:아이돌 황금기. 82년이 아이돌 풍년으로「꽃의 82년」등 으로 불리고 있다.
82년:CD탄생・생산 시작
85년:「夕やけニャンニャン(저녁놀 냥냥)」방송개시(~87년8월)。초대 집단 아이돌「오냥코 클럽(おニャン子クラブ)」이 탄생. 조금씩 내는 유닛이나 솔로 전략의 선구. AKB48의 시작 점・아키모토 야스시(秋元康)가 프로듀스.
88~93년:아이돌 빙하기

1980 년대에 데뷔한 아이돌

전반
마츠다 세이코(松田聖子)、이와사키 요시미(岩崎良美)、고이즈미 교코(小泉今日子)、야쿠시마루 히로코(薬師丸ひろ子)、아민(あみん)、미나미노 요코(南野陽子)

후반
오냥코 클럽(おニャン子クラブ)、나카야마 미호(中山美穂)、코쿠쇼 사유리(国生さゆり)、쿠도 시즈카(工藤静香)사카이 노리코(酒井法子)、Wink

90년대

90년대:그라비아 아이돌의 시대. 카토 레이코(かとうれいこ)、細川ふみえ(호소카와 후미에)、야마다 마리야(山田まりや)등이 CM나 버라이어디 방송등에 진출해 왔다.
90년:EP레코드 생산 종료
95년:「ASAYAN」방송개시。코무로(小室)프로듀스의 카하라 토모미(華原朋美)나 츤쿠(つんく)프로듀스의 모 무스메(モー娘)가 발굴되었다. 그 외에『THE夜もヒッパレ(THE요루모 힛파레)』에서 SPEED가 대뷰.

1990 년대에 데뷔한 아이돌

전반
시노하라 료코(篠原涼子)、아무로 나미에(安室奈美恵)、우치다 유키(内田有紀)MAX

후반
SPEED、모닝구 무스메(モーニング娘。)、하마사키 아유미(浜崎あゆみ)、우에토 아야(上戸彩)

2000년대

2000년대:モー娘(모 무스메).AKB48 등을 대표로 하는 집단 아이돌이 중심이 된다.
2001년:iPod발매2009년:『けいおん(케이온)』이 에니메이션 사상최초의 앨범 매상 1위를 획득.
2011년:AKB48의21st싱글「Everyday、カチューシャ(카츄샤)」가 싱글 사상최고의 첫주 133.4만 장의 매상을 기록 Mr.Children의「名もなき詩(이름없는 시)」(1996년2월 발매)가 유지 하고 있던 120.8만장을 웃돌아、15년4개월 만의 기록갱신.

2000 년대에 데뷔한 아이돌

전반
마츠우라 아야(松浦亜弥)、와카츠키 치나츠(若槻千夏)、오구라 유코(小倉優子)

후반
바보(Pabo)、AKB48、SKE48、SDN48

아이돌의 탄생. 당시의 아이돌은 손이 닿지 않는 “구름위의 존재”

여러분도 친숙한 단어로 애착이 있는 말「아이돌」. 원래는 70년대의 젊은이를 타겟으로 한 가수의 총칭으로 탄생했다는 것. 70년의 아이돌은 야마구치 모모에(山口百恵)가 대표 되는것 처럼, 손이 닿지 않는 “구름 위의 존대”로 열렬한 애정을 쏟는 팬이 대부분, 동성을 포함해 폭넓은 층에 공감을 주고 있었다. 그후 서서히 정착한 “아이돌”이라는 포지션은 80년대에 들어서 단번에 최성기를 맞이합니다. 마츠다 세이코(松田聖子)를 필두로 고이즈미 교코(小泉今日子), 마츠모토 이요(松本伊代)、나카모리 아키나(中森明菜), 키쿠치 모모코(菊池桃子)등 아이돌사에 이름을 남긴 인기 아이돌이 대량생산 된 시기라는 것은 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80년대는 TV의 가요프로나 아이돌 잡지, 영화 등 아이돌이 노출 가능한 미디어의 충실함에 의해, 상품으로서 “아이돌”의 가치가 높아지기 위해서는 다른 아이돌들과 차별화 가능한 캐릭터 설정(마츠다 세이코(松田聖子)=ブリっ子(부릿코…귀여운 척 하는 얘)、나카모리 아키나(中森明菜)=不良少女(불량 소녀)등)이 필요 했다. 이것을 허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일반적으로는 이것을 받아들인 위에 독자적인 세계관을 가진 이이돌을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미디어 전략이 아이돌 탄생의 열쇠로 되었던 이 시대, 그 「오냥코 글럽(おニャン子クラブ)」이 등장합니다. TV프로에서 태어난 이 아이돌은 오디션에 의해 멤버가 더해 진다는 획기적인 아이돌 생산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틀림없이 아이돌의 개념을 바꾸는 것이 된 혁명적인 시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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