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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KUOKA CREATORS / vol.011 森りょういち (모리 료이치)(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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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회차의 게스트는 영상 크리에이터인 모리 료이치 씨. 탈력계 CG 애니메이션인 [Peeping Life(피핑 라이프)]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인기를 모으고, 판매된 DVD는 무려 50만장을 돌파. 수 많은 콜라보레이션을 실현 시키는 등 기대되는 신인 크리에이터 중 한명으로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에는 모리 료이치 씨의 애니메이션에 대한 마음에 한발짝 다가가 보았다.
이상적인 환경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독립하는 것 이외에는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 지금 활동중이신 내용을 알려주세요.
모리 료이치(이하 모리):주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제작을 하고 있습니다. [Peeping Life(피핑 라이프)]라는 탈력계 CG 애니메이션의 제작을 메인으로 하고 있고, 몇년 전까지는 그 제작을 하기 위한 4~5명의 집단으로 구성되었었습니다. 그게 기업 홍보용 애니메이션 제작으로 의뢰를 받게 되면서 조금씩이지만 DVD 매상도 순조롭게 오르게 되어서 제작 량도 증가했습니다. 새로운 일은, 올해 4월 1일부터 NHK의 E테레에서 시작한 [딱지왕 김태풍]이라는 애니메이션의 기획과 감독, 제작을 하고 있습니다.
―― 모리 씨가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게 된 계기는 있으신가요?
모리:제 속에서 영상 관련 일을 하게 된 계기가 2가지 있습니다.
모리 료이치(이하 모리):주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제작을 하고 있습니다. [Peeping Life(피핑 라이프)]라는 탈력계 CG 애니메이션의 제작을 메인으로 하고 있고, 몇년 전까지는 그 제작을 하기 위한 4~5명의 집단으로 구성되었었습니다. 그게 기업 홍보용 애니메이션 제작으로 의뢰를 받게 되면서 조금씩이지만 DVD 매상도 순조롭게 오르게 되어서 제작 량도 증가했습니다. 새로운 일은, 올해 4월 1일부터 NHK의 E테레에서 시작한 [딱지왕 김태풍]이라는 애니메이션의 기획과 감독, 제작을 하고 있습니다.
―― 모리 씨가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게 된 계기는 있으신가요?
모리:제 속에서 영상 관련 일을 하게 된 계기가 2가지 있습니다.

먼저, 왜 CG를 제작하고 있느냐 하면, 중학교 3학년 때 3DCG를 놀이의 연장선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아버지의 영향으로 컴퓨터를 비교적 빠른 단계에 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컴퓨터를 빌려서 프리 소프트로 CG같은 걸 만들면서 노는 중에 점점 좋아하게 되었고, 이걸 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큐슈산업대학으로 진학했습니다. 사실은 (몽블랑 픽쳐스의)타케키요 감독처럼 큐슈예공대학(현: 큐슈대학 예술학부)에 가고싶었는데, 무리였어요(웃음).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저에게 있어서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저는 대학에 가는 시점에서 영상으로 먹고 살자고 정했습니다. 그저, 그건 CG를 생업으로 삼자는 것으로 그 앞에는 "취직"을 의식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CG 기술은 소프트 기능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어서, 그걸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걸려요. 눈 앞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잘 활용하지 못해서 정말로 안타까웠습니다. 대학 3학년 때가 되니 상상력과 스킬이 균형잡혀서 점점 스스로가 상상한 것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때는 만드는 것이 정말로 즐거웠었죠. 질질 끌 정도로 빠져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때, 의문이 들었어요. 이게 제 천직이 된다면 정말 즐겁겠지라고 생각하는 반면, 만약에 취직이 결정되어서 회사에 들어가게 된다면 스스로가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할지도 모른다고요. 그렇게 생각했을 때 저는 작품을 만들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시대가 변하는 과도기에, [비밀결사 매의 발톱단]이라는 플래쉬 애니메이션의 크리에이터인 FROGMAN 씨가 주목받기 시작하고, [초속 5센티미터]라는 영상작품을 스스로 만드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라는 그 분야의 선구적인 분들이 세상에 나오기 시작하셨어요.
―― 흔히 말하는 일반층에게도 알려진 명작들이지요.
모리:그렇습니다. 저에게는 그게 굉장히 빛나보였죠. 그 때 깨달았어요. 저는 CG 소프트를 쓰는 것이 즐거운 것이 아니라, 상상한 것을 만들어내는 그 과정이 좋은 것이라고요. 그걸 표현하기 위한 가장 자신과 어울리는 툴이 어쩌다가 CG가 된 것 뿐이에요. 어느 회사에 들어가도 내일부터 감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가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을 만들 수 있는 회사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구직 활동을 그만두고 스스로가 해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죠. 그 때 구직활동은 깔끔하게 그만뒀습니다. 이것이 두번째 계기입니다.
―― "취직을 하지 않음=창업"이라는 말씀이신가요?
모리:어디를 찾아보아도 이상적인 환경은 없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독립하는 것 이외엔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가야할 장소는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빙 돌아가도 그 장소에 확실하게 다다를 수 있는 루트를 계속 찾았어요. 주변에서 어떤 말을 들어도 신경쓰지 않겠다고 정하고요.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도 친가에 머무르면서 선배의 일을 도우면서 기술을 연마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혜택받은 것은, 대학에는 연구생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졸업을 해도 2년간 학교에 남을 수 있었습니다. 학생증도 있고, 대학 비품을 써도 된다는 제도가 있어서 그것도 저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도 취직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모리:저는 앞서 말씀드린 신카이 마코토 감독님을 동경하고 있었는데요, 똑같은 작품은 만들 수가 없어요.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연출 공부를 해야겠다 싶어서 잇세 오가타 씨의 워크샵에 참가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게 전환점이었죠. 전혀 리허설을 하지 않은 두 배우가 연극을 한다는 엉망진창인 연출법이었어요. 그래도 거기서 연출의 재미를 깨달았습니다. 이걸 어딘가에 활용할 수 없을까라고 생각했을 떄에 생겨난 것이 [Peeping Life]의 토대가 되는 [Each Life]라는 작품이었습니다. 그걸 10화 정도 만들어서, 도쿄의 전시회에서 부스 출전을 하고 있었을 때 코믹스 웹 필름의 사장님이 말을 걸어주셔서 "우리 회사에서 DVD를 내보자"며 말씀해 주셨어요. 사실은 그 때 코믹스 웹 필름이 프로듀스하고 있는 작품을 건네주셨는데, 그 때 건네 주신 작품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속 5센티미터]였었어요. 정말 충격이었죠. 이 타이밍에서 [Each Life]에서 [Peeping Life]로 이름을 변경했습니다.
―― 흔히 말하는 일반층에게도 알려진 명작들이지요.
모리:그렇습니다. 저에게는 그게 굉장히 빛나보였죠. 그 때 깨달았어요. 저는 CG 소프트를 쓰는 것이 즐거운 것이 아니라, 상상한 것을 만들어내는 그 과정이 좋은 것이라고요. 그걸 표현하기 위한 가장 자신과 어울리는 툴이 어쩌다가 CG가 된 것 뿐이에요. 어느 회사에 들어가도 내일부터 감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가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을 만들 수 있는 회사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구직 활동을 그만두고 스스로가 해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죠. 그 때 구직활동은 깔끔하게 그만뒀습니다. 이것이 두번째 계기입니다.
―― "취직을 하지 않음=창업"이라는 말씀이신가요?
모리:어디를 찾아보아도 이상적인 환경은 없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독립하는 것 이외엔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가야할 장소는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빙 돌아가도 그 장소에 확실하게 다다를 수 있는 루트를 계속 찾았어요. 주변에서 어떤 말을 들어도 신경쓰지 않겠다고 정하고요.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도 친가에 머무르면서 선배의 일을 도우면서 기술을 연마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혜택받은 것은, 대학에는 연구생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졸업을 해도 2년간 학교에 남을 수 있었습니다. 학생증도 있고, 대학 비품을 써도 된다는 제도가 있어서 그것도 저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도 취직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모리:저는 앞서 말씀드린 신카이 마코토 감독님을 동경하고 있었는데요, 똑같은 작품은 만들 수가 없어요.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연출 공부를 해야겠다 싶어서 잇세 오가타 씨의 워크샵에 참가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게 전환점이었죠. 전혀 리허설을 하지 않은 두 배우가 연극을 한다는 엉망진창인 연출법이었어요. 그래도 거기서 연출의 재미를 깨달았습니다. 이걸 어딘가에 활용할 수 없을까라고 생각했을 떄에 생겨난 것이 [Peeping Life]의 토대가 되는 [Each Life]라는 작품이었습니다. 그걸 10화 정도 만들어서, 도쿄의 전시회에서 부스 출전을 하고 있었을 때 코믹스 웹 필름의 사장님이 말을 걸어주셔서 "우리 회사에서 DVD를 내보자"며 말씀해 주셨어요. 사실은 그 때 코믹스 웹 필름이 프로듀스하고 있는 작품을 건네주셨는데, 그 때 건네 주신 작품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속 5센티미터]였었어요. 정말 충격이었죠. 이 타이밍에서 [Each Life]에서 [Peeping Life]로 이름을 변경했습니다.
영상 퀄리티가 낮아도, 닳아서 떨어질 정도로 봐주시는 것이 제작자 입장에서는 기쁩니다.
● [Peeping Life] "아버지와 딸의 첫 드라이브"
―― 각본은 모리 씨가 생각하고 계신 건가요?
모리:[Peeping Life]에는 각본이라고 불릴 만한 것은 없어서, 테마를 정해서 각본을 만든다는 감각으로 연기를 해 주시면 그걸 편집하고 있습니다. 연기는 성우가 좌우하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성우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워크샵에서 만난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오디션이나 소개로 추가된 멤버도 있지만, 중심은 그 때(워크샵)의 동료들이네요. 그러니까 정말로 그 워크샵은 제 마음 속에서는 큰 전환점이었어요.
―― 작품을 만들기에 앞서서 중요시하고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모리:애니메이션은 판타지를 그리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드래곤볼], [원피스], [도라에몽]이라던지...비현실적이잖아요. 그것이 애니메이션의 묘미이긴 하지만, 현실에 돌아왔을 때 스스로가 작게 느껴지게 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Peeping Life]는 감사하게도 "치유됬다"라던지 "활기를 받았다"라는 의견이 많아요. 왜냐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요(웃음). 주인공은 모험하지 않고, 세계를 구하지도 않고요. 애시당초, 일상물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주인공도 없어요. 그러니까, 보고 있는 사람이 "나는 안돼"라고 생각하는 일이 없다는 말이에요. 오히려 다소 우월감에 잠기는 경우가 있죠. 그리고, 스토리가 전혀 없어서 간편하게 볼 수 있지요. 그러니까 몇번이나 보시면서 그 때마다 새로운 발견을 하기도 한답니다. 역시 영상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신카이 감독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아직 만들지 못해요. 그래도 생각하는 법을 바꾸면 대작영화는, 의외로 극장과 DVD로 볼 수 있는 횟수가 많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영상의 퀄리티가 낮아도, 다 닳아 떨어질 때까지 봐주시는 것이 제작자 입장에서는 기쁘네요.
――[Peeping Life]는 5분 전후의 작품이 많다고 생각하는데요, 역시 그 간편함이라는 컨셉을 중요시 하는 것인가요?
모리:그렇습니다. 지금은 틈새 시간을 서로 빼앗으려 하기 때문에, 저 자신의 경험으로도 그렇지만 극장에서 2~3시간의 영화를 본다는 건 꽤나 체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24시간을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도 달라지는데, 엔터테인먼트는 넘쳐 흐르고 있으니 어지간히 시간이 없으면 딱히 영화가 아니라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요.
→모리 료이치 씨가 생각하는 후쿠오카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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