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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콘] 후쿠시마 마이코 ~아이돌의 상식을 깬 아키하바라의 젊은 프로듀서~(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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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키하바라의 라이브 하우스 "디어 스테이지(dear stage)와 "MORGA"의 프로듀서이자, 최근 주목받고 있는 아키하바라 출신 아이돌 "덴파구미.inc"의 프로듀서이기도 한 "모후쿠 짱", 후쿠시마 마이코씨.
 아키하바라라는 거리에 매료되어 아키하바라에서 자라난 그녀는, 아키하바라를 거점으로, 일본 그리고 해외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NHK 뉴스 채널의 네비게이터로도 출연하고 있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젊은 프로듀서 중 한명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녀는 왜 아키하바라와 아이돌을 고집하여 프로듀서로서의 삶을 선택한 것일까. 그녀의 홈이기도 한 디어 스테이지에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노이즈도 팝도 그 어느쪽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여기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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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프로듀스 해 온 프로젝트를 알려주세요.

후쿠시마 마이코(이하 후쿠시마):일단, 라이브&바 아키하바라 "디어 스테이지"입니다. 원래 2007년 12월에 지금과는 다른 장소에서 스타트 했었지만, 손님들의 반응도 굉장히 좋았고, 앞으로의 가능성도 느꼈기 때문에, 2008년 9월에 지금의 빌딩으로 이전해 왔습니다. 또한 그 직후쯤에 작업하기 시작했던 아이돌 유닛이 "덴파구미.inc"로, 2008년 12월에 최초 싱글을 공개했어요. 그 후, 2010년에 "MORGA(DJ바)"가 처음 디어 스테이지를 시작한 장소에서 오픈했습니다.

――지금의 직업을 가지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후쿠시마:친구의 권유로 디어 스테이지의 설립 멤버와 만남을 가졌고 "아키하바라에서 라이브 하우스를 하고 싶네요"라는 이야기부터 시작됐습니다. 음식점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 가게의 기반을 만들고, 저는 원래 프로덕션을 만들어 아이돌 프로듀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이 분야의 계획에 참가하게 되었죠. 일단은 음식점으로 기반을 만들고, 그 콘텐츠로 아이돌, 아티스트라는 걸 가미해 나갔어요.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후쿠시마:예전부터 음악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음악에 관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해서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세계에 발신할 수 있는 일본만의 음악을 만들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생각을 계속 추구하다 보니, 덴파송이나 아니메송, 아이돌송 이라는 음악, 그리고 아키하바라라는 거리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지요. 예전부터 아이돌에도 흥미는 있었기 때문에, 아이돌이라는 컬쳐 자체를 좀 더 제 힘으로 번영시킬 수 없을까, 그런 식으로 흥미 분야의 방향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어요.

――원래 아키하바라의 일명 오타쿠 문화에 흥미가 있었던 건 아닌가?

후쿠시마:흥미는 있었어요. 대학생 때부터 서서히 오타쿠 콘텐츠에 빠져, 코미케(코믹마켓)에도 가기 시작하고, M3(주로 음악이나 영상을 전문으로 하는 동인계 이벤트 중 하나)라던지 음악 동인판매에도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아키하바라와 오타쿠 컬쳐에 푹 빠져있었던 건가?

후쿠시마:메이드 카페와의 만남이 컸죠. 메이드 카페를 통해서 아키하바라의 여러 문화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 대학시절은 노이즈 뮤직을 하고 있었지만 거기에 빠져 있었을 때, 반대로 팝 뮤직의 대단함 이라던지, 엔터테인먼트의 엄청난 힘에 관심이 옮겨져, 그대로 아이돌이라는 상업적인 부분까지 다다르게 된거죠. 노이즈 뮤직은 관객도 적고, 이걸 비지니스로 계속 해나가기는 무리라고 생각했어요(웃음). 저같은 경우엔, 그에 대한 반동도 있었고 만인이 듣는 음악이란 무엇일까라는 생각도 했고. 그래서 그 음악을 만드는 방법에 흥미가 생겼죠. 노이즈 뮤직 등을 해왔던 것도 있고. 비로소 제가 할 수 있는 게 여기 있는게 아닐까 생각했던 게 계기였는지도 모르겠어요.

덴파구미.inc는, 저에겐 실험이었어요(웃음)


●모후쿠 짱 후쿠시마 마이코씨가 프로듀스 한 아이돌 덴파구미.inc의 뉴싱글 "츄루리츄루리라"

――스스로가 표현가라는 위치에도 있었다고 생각되는데, 프로듀스 직업에 전념하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후쿠시마:고등학교때 쯤, 저는 플레이어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고싶은 건 굉장히 많았죠. 플레이어라고 하면 한가지를 계속해서 끝까지 해나가는 장인 정신이 투철한 느낌이 있는데, 전 전체적인 아트 워크라던지, 패키지를 만들어 가는 쪽에 더 흥미가 있었어요. 그래서 예대를 선택했던 것도 있죠. 원래 음대 부속의 고등학교였는데, 그렇게 되면 음악 이외의 컬쳐를 배울 수 없어서, 좀 더 멀리 내다보고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죠.

――후쿠시마씨가 처음 프로듀스한 아이돌 덴파구미.inc는 어떤 존재?

후쿠시마:말하기가 굉장히 어려운데, "장대한 실험"이었어요(웃음). 처음 작업한 아이돌이였기 때문에, 무엇보다 프로듀서로서. 처음에는 일단 하고 싶은 것을 계속해서 시험삼아 해나갔었죠. 멤버들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식이었어요. 아까도 말했듯이, 아이돌은 좋아하고 있었지만, 그 아이돌이라는 존재에 대해 뭔가 부족하고 아쉽게 느끼고 있던 점도 많았거든요. 그때까지의 아이돌은, 남성이 주로 작업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사라던지, 연애에 대한 곡이라던지 여성으로서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어요. 의상도, "왜 이런 복장!?"이라고 느꼈던 때도 있었고. 하지만 그때 "이게 기회다"라고 생각했죠. 이렇게 고정되어 있는 것들은, 반대로 무너뜨리기 쉽다고. 이런 아이돌도 있다는 놀라움을 보여주고 싶었고 정말 정말 보람찼어요.

――활동 범위가 넓어지면서 주위 환경도 변했나?

후쿠시마:글쎄요. 요전에 부도칸 라이브때 스텝들 숫자에 그야말로 압도당했달까, 이렇게 많은 스텝들이 있구나 하고. 관객들이 많이 들어온 것보다도, 스텝들이 많았던 거에 놀랐어요.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왔다라는 걸 다시 한번 깊이 느꼈죠.

――팬 여러분들의 변화는 어때요?

후쿠시마:WWD투어(2013년)때 쯤부터, Zeep등 비교적 큰 회장에서의 라이브도 시작되었고, 관객들의 층이 점점 넓어지는 것을 느꼈어요. 특히 최근에는 여성들이 많다는 걸 느껴요. 여성 팬 분들이 꽤 많은 편인 것 같아요. 앞으로 더 늘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렇게 되기를 바래요. 역시나 여성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아이돌은 굉장히 이상적이기 때문에.

――참고로, 일본 컬쳐에 대한 해외로부터의 지지는 높다고 느끼나요?

후쿠시마:그렇죠. 최근에는 덴파구미.inc의 팬 분들도 아시아를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거기다 어떤 나라의 분들이든 모두 같은 식으로 응원해 주세요. 유럽 분들도 오타쿠 팬이 입는 "핫피(소매통이 넓은 일본식의 웃옷)"를 착용하고 응원해 주신다던가, 야광봉을 흔들어 주신다던가, 그런 스타일은 만국공통 인가봐요. 지금, 요코하마에서 동아시아 친선 대사를 하고 있기도 하고, 해외에서의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 늘었으면 좋겠어요.

⇒모후쿠 짱 후쿠시마 마이코씨에게 있어 터닝 포인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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