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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하카타 예능의 뿌리(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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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카마치 켄지로(深町健二郎) Presents 아시아의 음악도시 후쿠오카

하카타가 낳은 슈퍼스타 !「카와카미 오토지로(川上音二郎)」

뮤직먼스도 무사히마쳐,후쿠오카의 거리도 본격적으로 겨울 준비가 시작되려하고있다. 일상으로 돌아간 경치를 바라보며, 새삼스럽게 축제를 좋아하는 하카타 토박이의 기질은 애초에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그리고 사람이 예능문화를 사랑하는 정신이라는건 도대체 뭘까?깊어져가는 가을에 다소 철학적인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예능의 뿌리를 더듬어 올라가면, 흥미롭게도 일본신화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있다.태양신인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御神)가、스사노오노미코토(スサノオノミコト)의 너무 지나친 날뜀을 슬퍼하며 하늘바위문에 숨어버린다.세계는 암흑에 둘러쌓여, 난처해진 팔백만의 신들이 모여 회의를한다. 거기에서 아메노우즈메(アメノウズメ)가 요염하고 활기찬 춤을 추기시작한다.그러자, 신들이 일제히 큰 소리로 웃기 시작한다.틀어박혀있던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御神)는 밖의 모습이 신경쓰여, 조금만 바위문을 열어 들여보던 틈에, 밖으로 끌려나와 세계는 원래의 밝음을 되찾았다고하는 이야기입니다.이 전설이 시사하는 부분은, 무언가 곤란한 일이 생겼을때에는, 이론이 아니고“춤춘다”라는 예능이 세상을 구했다는 사실입니다. 아메노우즈메(アメノウズメ)는,지금도 예능의 신으로써 모셔지고있다.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는것에 있어서, 의식주와 어깨를 나란히 할만큼의 중요한 요소로써 예능은 존재하고있는 것입니다.


후쿠오카는 태고부터,대륙을 잇는 현관문으로써 번영해왔다.아마 당시의 국제교류에서는 말도 통하지않았던 적도 많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나의 제멋대로의 상상이지만, 그러한 때에는 예능이나 퍼포먼스를 피로하거나해서, 친목을 도모해온건 아닐까?거기에 기후나 풍토도 합쳐서, 오픈 마인드한 하카타인 기질같은것이 조금씩 형성되어온것은 아닐까 라는것이 제 나름의 가설입니다.그러한 역사적인 배경중에, 에도(江戸)에서 메이지(明治)로 크게 시대가 변하는 타이밍에,하카타에서, 일본의 예능사에 큰 변혁을 불러일으킬정도의 뛰어난 재능이 탄생한것입니다.그 인물이야 말로 후쿠오카번(藩)의 대상인의 아들로써,현재의 후쿠오카시 하카타구 츠마쇼우지에서 태어난 카와카미오토지로(川上音二郎)입니다.

카와카미오토지로(川上音二郎)
불과 14로 출가비슷하게 하카타를 뛰쳐나와, 동경의 죠우쇼사(増上寺)에 식객으로 있을때에,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를 만나,게이오 기주쿠(慶應義塾)의 문하생이 된다. 그러나 공부는 그럭저럭 만담이나 강담의 왕래로 예능에 눈을 뜨게 된다. 학교를 그만두고나서, 반정부활동을 하게되,또 후쿠오카의 현양사 창당에도 가담한다. 자유동자의 이름의 정치활동가로써 가두설법을 행하고있던 때에, 몇번이나 검거 되었다고한다. 거꾸로 말하면, 그만큼 오토지로(音二郎)의 길거리 퍼포먼스는 인기가있고, 영향력을 두려워한 조치였다고 추측 된다.

역시나 넌더리가 났던걸까, 그후부터 직접적인 정치활동을 무대로 옮겨,만담가・우키요테○ ○ (浮世亭○ ○)라는,타케시군단에도 있을법한 예명으로 이름을 바꾸어,결국에는 일세를 풍미한 히트작 「옷페케페 부시」로 큰 인기 !!그 기세에 힘입어 프랑스로 넘어가,유럽의 연극사정을 배우고 귀국. 그리고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도 총애한 인기기생,사다얏코(貞奴)와 결혼한다.또 연극이라고하면, 카부키(歌舞伎)나 노(能)등 전통예능 밖에 없었던 시대에,일러전쟁을 화재로한 전쟁극으로 인기를 얻는다. 이번에는 미국으로 넘어가,무스메도조샤(娘道成寺)등 일본의 문화를 소개해,차례차례 콜을 받아 공연으로 대륙을 횡단한다.그때에,사다얏코(貞奴)가 무대 데뷔해, 일본인 최초의 여배우가 탄생한다.다음해,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의 공연이 화제가 되어, 재차 유럽 투어를 하고, 마담,사다얏코(貞奴)는 대스타가 되어 일본식 풍 붐의 도화선 역활이 되었다. 그리고 우두머리,오토지로(音二郎)는 일본인으로써 처음으로 문화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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