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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KUOKA CREATORS / vol.016 中村俊介 (나카무라 슌스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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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무라 슌스케

제 16회차의 게스트는 "주식회사 시쿠미 디자인"의 대표를 담당하는 나카무라 슌스케 씨. 예전에 아시안비트 Interview Now의 기획에서도 취재를 했었지만, 이번에는 나카무라 씨의 내면에 초점을 두고 거기서부터 태어나는 컨텐츠나 회사에 대해서 여러가지 인터뷰를 나누어 보았다. 나카무라 씨의 "힘내지 않는다"는 삶의 방식이나 생각, 그리고 거기서부터 태어나는 창조야말로 일본과 세계를 잇는 중요한 키워드일지도 모른다.

학창시절에 만들었던 작품이 지금 저의 일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나카무라 슌스케
――먼저, 시쿠미 디자인은 어떤 회사인가요?

나카무라 슌스케(이하 나카무라):사명의 유래이기도 한데, 새로운 체험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시쿠미(구조) 디자인"이라는 회사로 하였습니다. 지금 메인으로 하는 것은 디지털 기술을 사용한 "보는 것만이 아닌 체험할 수 있는 광고"를 만들거나, 이벤트의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어트랙션을 만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컴퓨터로 악기를 만들거나 어플을 만들거나 하는 식으로요. 참가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시스템과 컨텐츠죠. 그러니 디자인 회사와 시스템 회사의 양방향을 겸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있으신가요?

나카무라:제가 이 회사를 설립한게 2005년 2월이었으니, 지금 10년째가 되네요. 10년 전에는 지금 하고 있는 장르의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서 이런 일을 해보자고 생각했던 것보다는, 어느샌가 이렇게 되어버린 느낌이네요. 회사를 만든 것은 10년 전의 큐슈 예공대의 대학원을 졸업하고 바로였습니다.
――학생 때 회사를 설립하신 건가요?

나카무라:회사를 설립한 건 대학을 졸업하고나서부터였지만, 직접적인 계기가 된 건 학생 때 만들었었던 작품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 작품이 지금도 저의 일의 근간이 되었고, 올해 후쿠오카시 시청 앞에서 진행된 이벤트(The Creators)에서 연주한 [KAGURA]라는 어플의 기초가 된 작품입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컴퓨터도 카메라도 성능이 좋지 않아서, 그 시대에는 카메라 앞에 서서 소리가 나는 작품을 예술로서 만들고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이게 평가가 좋아서, 여러 컨테스트에서 상을 받았어요. 그리고 그 흐름으로 후쿠오카현의 영 벤처 육성지원사업에 채택되어서 보조금을 받아 버렸으니, 회사를 만들 수 밖에 없었지요...(웃음)

――사업을 일으키려 하면 이 일로 돈을 버신다는 말씀이신데, 비즈니스 플랜은 생각하고 계셨던 건가요?

나카무라:아뇨, 전혀요(웃음). 그래도 할 수 밖에 없었죠. 그래도 저는 예공대를 졸업한 후에 키타큐슈의 큐슈공업대학의 강사직을 맡고 있었어요. 거기서 히비키노 캠퍼스(키타큐슈시 와카마츠구)에 산학연계를 메인으로 한 센터의 설립 멤버로서 불려갔죠. 제 일은 연구 뿐만 아니라 산학연계에서 외부로부터 돈을 받아내는 부소였는데, 사업을 하고 있는 의미로서는 "나홀로 산학 연계"였습니다. 게다가 당시에는 대학 벤처가 유행했었던 시기이기도 하고, 큐슈 공업대학은 일본의 탑 10에 들어갈 정도로 학생 벤처 기업의 비율이 컸어요. 설립 당시에는 저의 월급은 대학에서 받고, 비즈니스 플랜을 서두르지 않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고마운 환경이었죠. 그 사이에 대학 강사라는 신분을 이용해서 여러 기업과 이야기를 나누고, 비즈니스 플랜을 생각해나갔습니다. 거기서 처음에 생각해낸 것은 사람을 모으는 계기나 이벤트 프로모션으로서의 일거리입니다. 대학 사업의 일환으로 새롭게 지어지는 키타큐슈 공항에 관심을 끌만한 것을 원한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1층에는(은하철도 999의) 메텔, 2층에는 시를 홍보하는 70인치의 참가형 디스플레이를 설치했습니다. 이건 매상보다는 이 실적을 가지고 기업에 가지고 가면 이야기를 들어주게 된다는 의미로 중요했습니다. 실제로, 실시하게 되면 그 효과는 높아지니, 점점 일은 늘어갔습니다. 당시에는 이걸 상호작용형 광고라고 불렀었는데, 2007년 쯤부터 전자 간판이라는 말이 일본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주변에서 "시쿠미 디자인에서 하고 있는 일은, 전자 간판을 만드는 일이군요"라는 말씀을 해주시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저희는 참가형 상호작용 디스플레인을 만드는 회사입니다"라는 것만은 계속 말해왔습니다. 그 사이에 점점 저희들이 하고 있는 일의 영역을 만들거나갔다고 해야 하나, 주변이 입지를 굳혀주어서, 모르는 사이에 비지니스가 되었다는 느낌입니다. 신기하다면 신기할정도로, 어떻게든지 비즈니스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묵묵히 비즈니스를 해 왔다는 느낌이네요.

→나카무라 슌스케 씨에게 묻는 나카무라 씨의 인생의 전환점이나 컨텐츠 아이디어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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